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장 재교육 캠프 (문단 편집) === What has happened to me === 중국의 위구르인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고역을 치르다 [[미국]]으로 망명한 위구르인 여성 [[https://en.wikipedia.org/wiki/Mihrigul_Tursun|미흐리굴 투르순(Mihrigul Tursun)]]이 미국에서 출판한 책 'What has happened to me'가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에 정치권에 크나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미-중간 새로운 외교적인 마찰을 가져오고 있다. 투르순은 미국 의회에 출석하여 40평방미터[* 12평 방으로 1인당 0.17평. 1평이 1인이 잠을 잘 때 쓰이는 단위로 쓰인 걸 생각해보면 1평에 6명, 출근 시간 지하철 수준이다. 여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단 하나의 화장지도 없는 변기까지 있었다.]의 수용실에서 68명[* 투르순은 이 사람들을 수용 기간 동안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이미 아는 사이였던 이웃, 투르순의 학교 선생님이었던 분의 어린 딸들, 자신처럼 [[영국]] 유학을 마친 후 동네에 병원을 열었던 여의사 등도 있었다고 한다.]이 손목과 발목의 사슬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임의로 자리를 바꿀 수도 없었고, 누울 공간이 없어 2시간마다 교대로 누워 잠을 잤다고 한다. 서서 졸 수도 없이 낮에는 중국 주석에 대한 찬양, 공산당에 대한 감사를 외워서 외쳐야 했고, 이를 외우지 못하거나 말할 기력을 잃은 사람도 무자비한 구타에 시달려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끔찍한 [[고문]] 행위와 의료적 도움이 없는 방치, [[기아]][* 하루에 [[만터우]] 하나만을 주었는데, 수용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그 찐빵이 점차 작아졌고, 나중엔 주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고 한다.], 추위로 모두가 점차 쇠약해져갔다고 말했다. 이 끔찍한 감방에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더 끔찍한 "심문실"로 끌려가는 것 뿐이다. 투르순은 중국 당국이 종종 자신에게 헬멧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https://m.yna.co.kr/amp/view/AKR20150513140900009|호랑이 의자]]"라는 도구를 사용해 전기로 전신을 고문하였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친척까지 고문했다고 알려주어 정신적 고문을 가했는데, 그 결과 투르순은 그들에게 죽음을 애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괴로웠던 고문들 중 투르순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한 정신적 고문은 오히려 고문실 밖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용소에는 68번, 즉 68명이 존재했는데 투르순이 수감된 고작 3개월 사이 상기한 고문과 방치, 기아, 추위 등으로 9명이 사망한 그 사실 자체가 정신적 고문이었다고 한다. 투르순은 어두운 밤에 자신과 함께 하던 그녀들의 시신이 실려나갈 때마다 곧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투르순의 자녀는 [[이집트]] 시민권자였기에 이집트의 요청으로 자녀 송환을 위해 투르순 본인만이 석방되었다. 이에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찾았지만 부모, 형제, 하다못해 친척까지도 그 누구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기에 자신을 고문했던 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투르순은 미국 망명 이후에도 고문 후유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밝은 빛, 어두운 방 모두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자녀들 역시 초인종만 울려도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도 전했다. 미국에서의 생활 중 투르순의 전화로 걸려온 형제의 전화 메시지를 받았는데, "도대체 어떤 누나가 가족들에게 이런 짓을 하는가? 어떻게 누나가 부모와 형제들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당장 수용소에 대한 증언을 철회하고 중국 대사관으로 가서 중국에 충성한다는 말을 해야만 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투르순은 이 발언에 있는 암묵적인 함의를 알아차리고 절망에 빠져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연락을 통해 투르순이 하는 증언이 그녀의 형제, 자매, 부모, 친척을 대가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전달했고, 그것이 투르순 자신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용소 내에 본인이 갇혀있던 감방 201에서 단지 이슬람 전통 결혼식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400명 하객 전원과 함께 구속된 후, 심문실에 끌려갔다 온 후 한 달이나 [[질(신체)|질]]에서 피를 흘리다 사망한 23세 여성 파템한(Patemhan),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구타를 당해 죽은 62세 할머니 굴니사(Gulnisa) 등 내부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고, 왜 죽었는지 알려야만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https://hongkongfp.com/2018/12/08/video-full-ex-xinjiang-detainee-mihrigul-tursuns-full-testimony-us-congressional-hearing/|영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